오늘 이민국의 주요 뉴스는 프로세싱 타임에 관한 것이다. 시민권자 배우자로 2년짜리 “조건부”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의 경우, 2년이 되기 전 타이밍을 맞추어 “조건 해지”신청서류를 접수해야 한다. 이 해지신청을 하게 되면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날짜부터 2년동안 다시 유효기간이 늘어난다. 그런데 최근 이민국의 케이스 딜레이 현상이 극심화되어 이제는 4년동안 유효기간이 늘어난다는 소식이었다. 이는 그만큼 이민국의 일처리가 더 늘어난다는 좋지 않은 소식이기도 하다.
일처리가 빠르지 않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기다림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 기다림 사이에 많은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취업비자 승인, 가족/취업 영주권 승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불안함”이 커진다는 의미가 된다. 심리적으로 불안수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내 인생이 불행하다는 뜻이다.
내가 지금까지 대해 본 이민케이스 손님들은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했다. 내 기억으로 바로 떠오르는, 현재 우리 사무실의 손님들은 99년 생 부터 80년 생 까지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들 매우 “불안”하여, 행동이 평소보다 예민해진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겉으로 보이는 불안 레벨은 다르다. 불안 수준이 높은 사람일 수록 우리 사무실에 “빈번하게” 연락한다. “언제, 어떻게” 케이스가 끝나는가에 대한 질문이 많은 사람들이 불안 수준이 높게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그들의 “결함”이 절대로 아니다. 성격, 성향의 문제도 아니다. 이 불안수준에 기여하는 것은 오히려 “외부의 요인”이 많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특성, 일하는 곳의 주변 인물의 영향, 가족 관계, 인생 경험, 경제적 문제, 심리적 압박감, 등등 여러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스폰서 회사도 불안함이 있다. 그러나 오늘은 고용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싶다.
나 또한 20년 이상 이민자로 살아오면서, 이 “불안함”을 관리하는 것이 인생의 숙제이구나, 라는 것을 계속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 내가 처음부터 다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나에게 온전히 내 힘으로 풀어야만 했던 “status의 숙제”가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변호사가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는 status 로 불안함은 없지만, 또 다른 종류의 불안함들이 나를 한 번 씩 괴롭힌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 아는 불안함을 나 또한 내 방식대로 “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졌다고 한다. 첫번째는 “곧 누군가가 우리를 구해줄거야. 우린 곧 살아서 나갈거야!”라고 생각한 부류. 두번째는 이런 생각 없이 하루 하루 수용소에서 “생활”한 부류. 어떤 부류가 진짜 종전 후 살아서 풀려나게 되었을까? 바로 두번째 부류이다. 첫번째 부류는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종전을 못 보고 사망했다고 한다. 우리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상황이 곧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대”일 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실망이 반복되면? 절망한다.
프로세싱 타임이 늘어나?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정말 아니라고.. 오늘 내가 괜찮아야 한다. 어떻게 괜찮을 수 있냐고? 정답은 아무도 모른다. 왜? 타인의 정답이 내 정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길은 타인의 길일 뿐, 내 길은 다르다. 그럼 어떡하냐고? 당신들의 변호사로써, 몇가지 아이디어는 줄 수 있다. 당신들보다 먼저 이민 status라는 수용소에 갇혀 있던 나는 어떻게 살아서 풀려났는지.
- 일 이외의 시간엔 플랜 B, 플랜 C를 찾아다녔다. “이 영주권이 이렇게 나오지 않으면 나는 어떡하지?” 대안을 조사했다. 다른 비자? 다른 회사? 가족? 그냥 다 접고 한국? 내 “인생”의 대안을 찾아 계속 리서치 했다. 미국 이민법의 테두리 안에서 내가 해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말 그대로 “총동원” 했다. 물론, 최악의 상황까지 다 계산에 넣어 보았다. 이것이 나를 오늘의 “이민변호사”로 만들어 주었다.
- 미친척했고, 안 해 본걸 했다. 평소의 나를 깨려고 노력했다. 평소에 맨날 만나던 사람이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려 상황을 만들어 보았고, 안 가본 곳을 일부러 찾아다녔다. “내가..굳이?”라고 내키지 않아도 일단 했다. “내가 이걸? 내가 이 사람을??”이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했다. 할까 말까 생각이 들면 일단 했다. 행동하면서 생각했다.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았다.
-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돈 모아야 하는데?” “나 돈이 많이 없는데?” “주식 사야 하는데?” “집도 사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일단 접어두었다. 물론, “경제활동은 계속 해야 해”라는 마음에는 변함 없었다. 나 자신은 내가 먹여 살려야 하니까. 그러나 그 이상의 욕심은 내지 않았고, 내 건강과 마음을 달래는 것에 돈을 “잘” 쓰려 노력했다.
- 서로를 “견뎌”주고 위로 해 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이렇게 해 봐” “잘 될거야” “곧 되겠지” “괜찮아, 이거 안되면 저거 해봐” “내가 도와줄게” 이렇게 힘을 주고 받은 사람들이 존재했다. 실질적 도움도 주고 받았고, 마음의 위로도 주고 받았다. 그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겼고, 내가 “먼저” 도움을 “요청”했고, 고마움을 “표현”했다. 내가 먼저 연락/요청하면 반드시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존재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이 아니면 저 사람이 있구나, 많지는 않아도 분명 있구나, 깨달았다.
-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일단 내가 가진 것, 내가 할 줄 아는 것, 나의 장점 “목록”을 수시로 적어 보았다. 남에게 나의 장점이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내 마음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찾아 읽었고, 자기관리, 자기계발 영상을 찾아서 보았다. 껍데기보다 속을 채우는 것에 시간을 더 썼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록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아, 사람은 A가 있으면 B가 없고, 나보다 C가 더 나으면 D가 부족하구나.” 사람은 그래서 전체적으로 따져 보면, 위 아래가 없고 이기고 지는 게 없구나. 어떤 면에서는 내가 저 사람보다 아래고, 다른 면에서는 저 사람이 나보다 아래구나. 그래서 비교 대상은 항상 “나 자신”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내 영주권을 받을 때 까지 산전 수전을 겪어보았다. 거절도 당해보고, 승인된 케이스가 캔슬도 되어 봤다. 결론적으로 나는 첫 스폰서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를 통해 영주권을 받았다. 그 동안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물론 한번씩 마음 속 깊은 억울함이 올라왔고, 남 모르게 많이 울었고, 못나게 가족에게 화도 내 보았다. 신기하게도 모두 나를 “인생 즐기는 사람” “여유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 으로 보았다. 그 기다림의 기간동안 친구들과 잘 지냈고, 지인도 늘어났고, 수입도 늘어났고, 돈 쓰는 기쁨도 느껴보았고, 외모수준도 발전했고, 사람에 대한 이해심도 늘어났다. 왠만한 것은 지나가는 방법도 터득했고, 가정도 더 화목해졌다.
내 동생같고 내 친구같은, 예전의 나를 거울처럼 보여주는 당신들에게 묻는다. 늘어나는 프로세싱 타임으로 불안한 그 마음,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민 status가 의도대로 빨리 진행 된다고 불행한 나의 오늘이 내일 갑자기 변할까? 해결된 status를 가지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걸까? 아니, 무엇을 하고 싶은걸까? 정확히 누구를 위한 비자/영주권일까?
불안함의 노예에서 벗어나려면, 삶의 방향키 만큼은 외부의 누군가가 아닌 내 자신이 잡아야 한다.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야만 노예 생활이 청산된다. 정말 귀찮지만, 생각 할 수록 골치가 아프지만, 우리는 모두 죽을 때 까지, 나 자신과 깊은 대화가 필요하다.
응원한다. 진심으로.